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디라 간디 (문단 편집) == 외교 정책 == 인디라 간디 총리는 오랜 기간 동안 인도를 이끌었던 장기집권총리였던만큼 많은 족적을 남겼다. ||[[파일:brezhnev-indira-759.jpg|height=300]]||[[파일:oaikodvmnx-1606266273.jpg|height=300]]||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과 인디라 간디 총리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인디라 간디 총리[* 저 사진 하나만으로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보인다. 닉슨 대통령은 인디라 간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정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 외교적으로 보면 한창 [[냉전]]이 진행되고 있던 시절에 [[미국]]과 [[소련]] 그어디에도 붙지 않고 중립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의 기본 외교기조를 그대로 계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인도는 [[제3세계]]의 수장국으로서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보이려 노력했는데, 그와중에 인디라 간디 시절에는 유난히 소련과의 관계가 좋았다. 특히 소련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 방글라데시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인도의 편을 들어 [[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그때 이래로 대소련 관계는 급속도로 호전된다. 인디라 간디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껄끄럽게 여겼지만 소련과의 관계를 생각해 일부러 비판을 자제하기도 했다. 소련은 인도와의 밀월관계를 이어가면서 경제적, 관세적 혜택을 줬고 1980년대 초에는 인도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소련과 인도가 서로의 편의를 봐주면서 괜찮은 관계를 이어갔던 시절이었던 것. 반대로 [[미국]]과의 관계는 소련만큼 매끄럽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수장을 자처하던 미국으로서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따로노는 인도가 예뻐보일 수가 없었고, 인도가 [[비동맹운동]]을 창설해 제3세계 국가들을 규합하려 시도하자 이 시도도 딱히 좋게 보진 않았다. 특히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인디라 간디 총리를 엄청 싫어했는데, 그녀를 '암캐' 혹은 '교활한 여우'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다만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 들어서는 관계가 상당히 개선된다. 미국 외에 [[서유럽]] 국가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일단 그녀가 유년 시절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인맥이 많았기도 했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나 [[마가렛 대처]] 총리와 친구를 먹기도 했다. 중동 외교의 경우 [[팔레스타인]]을 지지했다. [[이스라엘]]을 밀어주던 미국으로서는 인도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던 또다른 이유기도 했다. 인도가 미국과의 갈등도 감수하면서 굳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했던 이유는 [[유대교]]를 모태로 한 [[이스라엘]]이 종교국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최대 적국인 [[파키스탄]]도 종교국가를 자처했기에 세속주의를 추구하던 인도로서는 도저히 이스라엘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인도는 이렇게 친아랍 정책을 펴면서 파키스탄과의 신경전을 벌였는데, 정작 이렇게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터졌을 때 아랍 국가들이 파키스탄을 지지하거나 중립을 유지하자 인디라 간디는 어마어마하게 실망하게 된다. 아랍 국가들도 경제력이나 국력이 인도가 우위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파키스탄이 이슬람 국가였기 때문에 보수주의적인 아랍 특성상 파키스탄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후 인디라 간디는 아랍 국가가 아니라 [[이란]]의 [[팔라비 왕조]]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당시 팔라비 왕조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반이슬람적 개혁 정책을 폈기에 서로의 입장이 맞았던 덕에 이란과 인도 관계는 크게 호전된다. 인디라 간디는 끊임없이 앞마당인 [[남아시아]] 지방에서 인도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려 시도했다. 반대로 최대 경쟁국이자 원수나 다름없던 파키스탄의 힘을 빼놓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에서 방글라 반군을 지원해준 일이었다. 인디라 간디는 막대한 군수물자를 지원하며 결국 동벵골이 파키스탄에서 떨어져나와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방글라데시가 지나치게 인도와 밀착하면 자연스레 인도에 흡수되어버릴 걸 두려워해 조금 사이가 멀어졌지만 그대로 인도와 방글라데시 사이의 관계는 어느 정도 호의적이었다. 어쨌든 그 외에도 파키스탄과의 충돌은 끝없이 일어났다. 비록 1972년 심라 협정으로 일시적 평화를 찾긴 했지만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는 여전히 최악이었다. 인디라 간디 총리가 70년대에 '미소짓는 부처' 프로젝트로 첫 [[핵실험]]을 강행하자 파키스탄이 이를 맹비난하면서 전쟁 직전까지 수 차례 몰리기도 했지만 어찌어찌해서 아슬아슬하게 힘겨루기를 계속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